20세기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논고 4분 읽기
>> YOUR LINK HERE: ___ http://youtube.com/watch?v=mlFDws_pCr8
다물어클럽 http://askall.co.kr/ 에서 더 많은 인문학 콘텐츠를 만나보세요! • === • 1929년 어느날, 영국의 저명한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소리쳤습니다. “신이 돌아온다!” 바로 당대 최고의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이 학계로 돌아온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뒤였죠. • 비트겐슈타인은 1889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부유한 철강업자의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다재다능했지만 그중에서도 공학 분야에 남다른 자질을 보였다고 알려집니다. 어린 시절 최신형 재봉틀을 스스로 조립하기도 했고, 청년기에는 제트 엔진에 대한 특허를 내기도 했죠. 하지만 그의 관심을 끈 것은 공학 자체보다 수학적 문제에 가까웠습니다. 특히 그는 우연히 버트런드 러셀의 저서 '수학의 원리'를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죠. • 1911년, 그는 결국 당대 최고의 철학자로 추앙받던 러셀을 만나게 됩니다. 하지만 자극 받은 것은 오히려 러셀이었습니다. 그는 비트겐슈타인을 만난 것이 자신의 일생에서 가장 충격적인 경험이었다고 회상하며 그를 '천재의 완벽한 전형'이라고 추켜세웠죠. 그는 이후 케임브리지에서 논리학자 존슨, 철학자 무어, 경제학자 케인즈 등 당대의 석학들과 교류하며 공부했습니다. • 하지만 이 역시 잠시. 그는 더 이상 이들에게 배울 것이 없다고 판단하고, 3년여 만에 케임브리지를 떠나죠. 그리고 그는 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오스트리아군에 지원해 전장으로 향합니다. 그는 그곳에서 자신의 체험을 일기로 남긴 것은 물론, 기존에 논의했던 철학적 사고들을 발전시켜나가기 시작합니다. 특히 이탈리아 군의 포로가 돼 수감생활을 한 약 10개월의 시간동안 전기 철학의 대표작이라 불리는 '논리철학논고'를 완성합니다. 그리고 석방된 뒤 원고를 러셀과 프레게에게 보내고 철학계를 떠나죠. 철학계를 떠나는 이유 역시 비트겐슈타인다웠습니다. 바로 철학의 문제가 모두 해소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 그렇다면 그의 책 '논리철학논고'는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요? 그는 이 책에서 언어가 세계에 대한 그림과 같다는 '그림 이론'을 주장합니다. 그는 교통사고를 다루는 재판에서 장난감 자동차와 인형을 사용해 사건을 설명했다는 기사를 보고 이 이론을 떠올렸습니다. 사람들이 실제가 아닌 모형을 갖고 사건을 설명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설명에 동원된 모형들이 실제의 사물과 사람에 대응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언어도 이와 동일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즉, 언어가 세계와 대응하고 있다는 것이죠. 그는 언어는 '명제'로, 세계는 '사태'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둘이 각각 짝지어져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때문에 언어와 세계의 구조는 논리적으로 동일하며, 언어는 세계를 그림처럼 묘사하기 때문에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 한편 여기서 '사태'란 사실이 아닌 사실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의미합니다. 만약 그 사태가 실제로 일어나면 이를 설명한 언어, 즉 명제는 '참'이 되며, 만약 일어나지 않을 경우엔 '거짓'이 됩니다. 실재하지 않는 사태를 언급하는 명제는 의미 없는 명제, 즉 '헛소리'에 불과하죠. 비트겐슈타인은 이런 관점을 바탕으로 기존의 철학이 다룬 신과 영혼, 형이상학적 주제 등이 의미 없는 이야기에 불과하다고 보았습니다. 왜냐면 이들은 이 세계를 초월한 것, 다시 말해 언어를 초월한 것들이기 때문이죠. 그는 말합니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선 침묵하라”고 말이죠. • '논리철학논고'는 아주 짧은 함축적인 문장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책의 영향력은 거대했습니다. 논리실증주의 등 수많은 사상과 학파에에 영향을 주었고, 20세기 영미 철학에도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죠. 그렇지만 그는 이 책에 담긴 내용을 자신의 후기 철학을 통해 상당부분 부정하고, 또 수정했습니다. 왜냐고요? 그 이유는 다음 시간에 알아보도록 하죠.
#############################
